예수님께서는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예루살렘 성안에 가시는 길에 잎만 무성한 나무를 보시고, 열매가 없어서 저주하니 곧 말라 버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18)
"길 가에서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찿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곧 마른지라"(마태복음21장19절)
성전 정화에 이어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예수님께서 애매한 나무를 죽이는 이상한것 행동처럼 보이지만은 공의에 대한 선포인 것입니다.
나무에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열매를 기대하기에 충분한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잎이 무성하기 전에 열매를 맺기 시작하기 때문에 잎이 무성할 때에는 이미 무화과 열매가 무르 익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충분한 열매를 가질만한 조건에서 열매가 없다는 것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겉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위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짓된 외식자들은 잠시 동안은 그럴듯하게 많은 백성들을 속인 수는 있지만은 영구적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칭송과 존경을 받고 지위와 명예를 자랑하지만은, 예수님 보시기에는 열매없는 위선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야로 유대땅에 오셨음에도 종교지도자들은 영접하거나 환대하지도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더 이상 열매를 기대 못하는 악화된 저주받은 상태인 것입니다.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에 실망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린 선고는 "이제부터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저주인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어가는 파괴적 권능은 무화과 나무라는 대한 이스라엘의 상징적 의미가 예언되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예레미아8장13절)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의 패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에 유대교 종교 지도층의 불순종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급작스런 무화과 나무의 저주에 무화과 나무가가 시들어 버리는 이적을 보고 제자들이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루는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믿음이 았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라하여도 될 것이요"(21)
"너희가 기도할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1장22절)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열매를 기대하시고 다가 오셨을 때 자신있게 열매를 보여 드릴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와 믿음으로 무장하여 선한 일에 힘쓰며, 열매맺는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